"누가 누구로 하여금 무엇을 왜 기억하도록 만드는가"

과거는 역사가들이 한가로이 거니는 중립적 지역이 아니라 치열한 전장이다. 기억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정체성 규정을 통해 현실을 만들어 내는 도구이다. 그래서 기억을 둘러싼 논장에서는 언제나 현재의 가치들이 충돌한다. 그리고 영웅을 만들고 전승하는 과정 만큼 이를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것도 없다.

이 책은 이같은 점에 주목, 근대 유럽을 만든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서 각 국을 대표하는 국민적 영웅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승되었는지를 밝힌, '영웅 담론의 변천사'라 할 만하다. 서울대 인문학 연구소의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 팀에 속한 연구자들이 나폴레옹, 잔 다르크, 엘리자베스, 무솔리니, 비스마르크를 둘러싼 담론의 형성과 변천사을 살폈다.

이들 인물이 어떠한 맥락에서 영웅으로 탄생하고 신화화되었으며, 그러한 기억이 후대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어떻게 왜곡, 조작되고 동원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했다. 특히 이들 영웅이야기들이 국민정체성의 형성에 기여한 바를 추적하면서, 근대 국가들이 벌인 '기억의 전투', '기억의 정치'를 조명하는 부분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