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지기 추천도서

가난했던 시절, 소녀들이 읽던 책

2017-08-121868

간혹 생각해 봅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

우리는 어떻게 살았는지.......

 

예전 엄혹하던 80년대

시골에서 갓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올라온

가난한 농민의 아들 딸들의 자취방에 가보면

직장일에 쫒겨 방안에 마구 널부러진 양말과 뒹구는 술병과 

아무렇게나 벗어던져진 옷들 속에

 

그래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면면히 이어가려는 가련한 몸부림 속에 

단단한 라면 박스를 주어다 삼은 책꽂이에

많아봐야 20권이 족히 될 만한 그들의 책 목록을 볼라치면

 

김동길, 김형석과 신달자, 유안진의 수필과 이문열과 박완서의 소설과

이해인의 시집 <<내 혼에 불을 놓아>>, 김초혜의 <<사랑굿>>과

서정윤의 <<홀로서기>> 같은 책들이 있었지요.

 

간혹 의식있는 친구나

막 태동한 노조에 활동을 시작한 이들의 방에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이나 <<철학 에세이>> 같은 책들이 있기도 했었지요. 

 

한번은

남녀 공학인 촌동네(시골 면소재지) 고등학교에서 

그나마 전교 10등 안쪽을 다투던 내 이웃집 여자 아이...

남자가 아닌 계집이라고, 그리고 집안이 가난하다 하여 

대학 진학은 꿈도 못꾸고 

당시 흔하게 '공순이'라 불리던 이들이 가던 필수 코스인 구미공단의 

그나마 가방끈이 있어야 들어간다던

졸업반 담임 선생의 추천으로 어렵사리 들어간 LG반도체(현재의 하이닉스)

다니던 옆집 아이의 기숙사를 어렵사리 둘러보게 되었지요?

 

피끓는 청춘의 시절이라면

그것도 이성의 방안이라면

속옷에 더 먼저 눈길이 가는게 인지상정일 것일진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녀들의 방안에 아무렇게나 휙 던져진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먼저 눈에 들어오더구요.

 

저 책이 대체 뭐길래?

잔업에 지친, 졸음에 겨운

꽃다운 그녀들이 

잠을 아껴가며 보는 책일까 싶어 몹시 궁금하기도 했었지요?   

 

그리고 또 하나, 궁금했던 것은  

제목으로 적인 '싱아'가 무엇인지 궁금했었지요.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라면 몇 초만에 해결될 의문이지만

그날 이후...

싱아가 무엇이지 하면서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졌지요.

 

물론 도서관에 가서 식물백과나 자연도감 같은 책을 뒤져보면

쉬이 해결될 것이었지만 

그리하면 뭔가 서운하고 이상할 것만 같았죠.

 

잠에 겨운, 꽃다운 청춘을 바치는

가난한 내 동네의 그녀들의 노동 속에 읽힌

책들이 마냥 아까울 것만 같았어요.

 

싱아라? 

상아도 아니고 싱아? 

형아, 동생도 아니고 싱아? 

싱아가 뭐길래? 쳐 먹기까지 한다나?

 

난 처음엔 싱아가 박주가리 열매인줄 알았죠.

박주가리라면 어릴적 내가 소 먹이러 다닐 때

마을 하천 제방에서 지겹도록 따 먹은 것인데...

 

한참이 지난 뒤엔 또 삘기가 싱아인줄 알았네요.

물론 삘기라면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때까지 

봄이면 논밭둑에서 지겹도록 올라오는 삘기를 뽑아 

하루에 삘기 일 이백개를 뽑아, 한 다발을 만들 정도로

삘기 매니아 이기도 했었지요.

 

세월이 흘러 

박주가리도. 삘기도

그것이 싱아가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단 한번도 책에서 그것을 찾지 않고 

진리를 구하듯 

돌고 돌아 어렵고 어렵게 

산 너머 멀고먼 이상향을 찾듯 

진리처럼 찾아가는 고행의 선승처럼 

오래도록

싱아가 무엇인지 찾아 간 것인데 

 

그래서 내겐 박완서의 소설 속 '싱아'가 조금은 

더 특별해 보이기도 한데.

 

간혹 혼자서

술을 한잔 먹은 날은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지끌여 보기도 합니다.

 

" 그 많던 싱아는 니가 다 쳐 먹었제"라고?

 

 

"아카시아꽃도 첨 보는 꽃이려니와 서울 아이들도 자연에서 곧장 먹을 걸 취한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 꽃을 통해서 였다.

 

잘 먹는 아이는 송이째 들고 포도송이에서 포도을 따 먹듯이 차례 차례 맛있게 먹어 들어 갔다. 나도 누가 볼세라 몰래 그 꽃을 한 송이 먹어 보았더니 비릿하고 들척지근했다. 그리고는 헛구역질이 났다. 무언가로 입가심을 해야 들 뜬 비위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나는 불현듯 싱아가 생각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였다. 산기슭이나 길가 마우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꺽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상처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찿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 속을 찿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

 

--- 박완서 소설 <<그 많던 상아는 누가 다 먹었을가>> 가운데

      싱아를 잘 설명하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