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공 물재선생 문집 - 번역본 (알가29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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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공 물재선생 문집 - 번역본 (알가29코너) 도서상품에 대한 정보입니다.
저자 손승락 편집
출판사 / 판형 평해손씨중앙종친회 / 2001년 초판
규격 / 쪽수 190*260 / 454쪽
정가 / 판매가 0원 / 20,000원

도서 상품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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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설명

문정공 물재(勿齋) 손순효선생 문집 (전)

평해 손씨 증좌찬성공[밀]의 가문은 명문임에 틀림없습니다. 흔히 인물의 경중을 논할 때 "인도가 무거우
냐? 간디가 무거우냐? " 묻듯이 어지간한 문중은 인물을 다 합쳐도 문정공[손순효] 한 분의 무게를 감당하
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물재 손순효 선생의 도학 문장의 울연함을 어찌 손씨 가문에 국한시키겠습니까?

 

  손순효(孫舜孝 :1427(세종 9 ~1497연산군 3 )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경보(敬甫) 호는 물재(勿齋),칠휴거사(七休居士) 군수 밀(密)의 아들이다.
   문과에 급제 관찰사,대사헌,찬성에가지 오른분이다.

    판원(判院)손순효는 순수하고 부지런 하여 그 밖에는 다른 일이 없었으며

   일마다 매양 곧은 뜻으로 바르게 행했다.
   그러나 풍속이나 강상(綱常)에 관계되는 일은 반드시 먼저 듯을 가졌으며

   술에 취하면 호탕한 말을 그치지 않았다.
   강원도 감사(監司)로 있을때 마침 몹시 가물어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도

   효험이  없었다.
   이에 공은 말하기를 지금 비가 오지 않는것은 다름이 아니다.
   그것은 수령(守令)인 내가 정성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만일 정성껏 한다면 하늘이 감동해서 반드시 비를 줄것이다.
   하고 드디어 재계(齋戒)하고 친히 나가서 비를 빌었다.
   그랬더니 그날 밤중에 빗소리가 들렸다.공은 기뻐 하면서 일어나 말하기를
   
<나는 마땅히 하늘에 감사를 드려야겠다.>
   공은 조복(朝服)을 입고 뜰 가운데 나아가 서서 수없이하늘을 향해 절을

   했더니 비는 점점 세차게 왔다.
   이것을 보고 아전 하나가 우산을 들고 뒤에서 받처 주었다.그러나 공은 말하

   기를 <높은 하늘 아래에서 어찌 우산을 받는단 말이냐> 하고 우산을 치

   우라고 하였다. 이리 하여 공은 옷이 모두 젖었다.

   또 경상 감사로 있을때 효자(孝子)나 열녀(烈女)의 정문(旌門)을 지날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두번 절하며 아무리 비가 오더라도 피하지 않았다. 
   도사(都事) 이집(李緝)이 도롱이를 두르고 밭에 앉아 있는것을 보고 공은

   절을 하고서 도사에게 말하기를 <족하(足下)는 무엇을 하고있소?> 하니
   이집은 <내가 영감보다 먼저 절을 했소> 하며 답하자
   이 말을 듣고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가리고 웃었다.
   또 일찌기 평양에 갔을때 기자묘(箕子墓)를 보고 말에서 내려 참배하고 말하

   기를  <우리 동방사람으로 하여금 예의의 나라에 살도록 해준것은 오

   로지 태사(太師)의 교훈에 었다> 했다.
    또 어느 때는 천령(穿嶺)에서 사냥을 하다가 무서운 범에게 포위 당하고

    말았다.
    공은 이때 술이 취하여 나무 화살을 뽑아 활을 당기면서 말을 달려 들어가서

    범을 쏘려고 했다.

    이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이 애써 중지 시켰으니 모든 일에 있어 이런 일이

    많았다.
    매양 임금 앞에서 충서(忠恕)라는 두 글자를 써가지고 정성스럽게 아뢰니

    성종(成宗)은 그를 충성되고 곧은 사람으로 여겨 드디어 크게 올려 쓰게

    되었다.
    공은 지위가 높으면서도 마음 가지기를 더욱 검소하게 하여 언제나 술자리

    를 마련 할 때에는 검은 콩나물이나 송아(松芽) 같은것만 장만하고 오로지

    번거로운 일을 싫어하였다.

    - 성현(成俔)의 용재총화(용齋叢話) -

 

    칠휴(七休) 손순효(孫舜孝)는 여러 고을을 안행(按行) 하다가 길가에 있는

   효자와 열녀의 정문(旌門)을 보면 반드시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 지나갔다.
    금오산(金烏山) 밑을 지나 가다가  야은(冶隱) 길재(吉再) 선생의 살던 곳에

    나가 서 글을 지어 읽기를

    拜瞻祠下彷彿儀形....(배첨사하방불의형)......사당 아래에서 첨배 하니 생시

                                                                      의 선생모습 뵙는듯하옵니다.
    惟山洛爲水之如昨.....(유산락위수지여작).....오직 금오산과 낙수(洛水)는

                                                                      어제와 같은데
    念先生兮安在...........(금선생혜안재)............선생님 생각 하노니 지금 어디

                                                                      에 계시온지
    奠蕉黃與례丹...........(전초황여례단)............누른 파조와 선지로 제사를

                                                                      올리오니
    冀英靈之不味也........(기영령지불미야).........비옵건대 영령께서는 알아 주

                                                                      시옵소서! 했다.
                                           .

   이 늙은이는 글자를 깎고 다듬는데 뜻을 두지않으면서도 가슴속에서 나오는

   글은 자연히 이와 같았으니 가히 그 풍채를 생각해 볼 수가 있다.

   - 김안로(金安老)의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

 

    모든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할 때에는 정신이 어지럽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죽는 자는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이라도 이것을 능히 하지 못한다.
    찬성 (贊成) 손순효(孫舜孝)는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 나는 꼭 아무런 병도 없이 죽기를 바란다 > 했다.
    어느날 재상들과 함께 술을 몹시 마시고 밤새워 이야기 하더니 새벽에 일어
    나자 그 부인을 보고 <내가 기분이 몹시 언짢으니 여러 아이들을 불러서

   속히 밥을 짓도록 하시오>했다. 그는 또 계속하여

    <내가 어릴때 책을 끼고 사문(師門)에 다니던 일을 흉내내 보겠소!>
    하더니 책 한 권을 겨드랑이에 끼고 계단을 두어 차례 오르내리더니
    <이제 피곤하오 ,나는 좀 쉬어야겠소 > 하고는 베개를 베고 누웠다.
    집안 사람들은 그가 잠이 들었거니 생각 했는데 얼마 후에 보니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좋은 소주(燒酒)를 큰 병으로 하나 영석(靈石) 아래에 묻어 두도록 일찌기

    명한 일이 있었는데 공이 죽자 자손들이 그대로 하였다.

    - 조신(曺伸)의 소문쇄록(소聞쇄錄) - 
   

   물재(勿齋) 손순효(孫舜孝)는 방백(方伯)으로 있을때 만일 가뭄을 만나면

   매양 정성을 들여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데 이렇게 하면 반드시 효험이

   있었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노하여 신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비를 빌었는데 어째서 비를 주지 않느냐 > 했다.

   이것은 신을 노하게 하는 말로서 비록 내몸을 반성 하는 도리는 아니지만

   만일 자기 자신이 정성을 들이지 않았으면 필경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것이

   다.

   - 임보신(任輔臣)의 병진정사록(丙辰丁巳錄) -

도서 부연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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